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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든지 간에 피할 수 없는 험난하고 기나긴 환자와의

여정이 또렷이 눈앞에 그려졌다.

헐레벌떡 달려오신 어머니에게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

이었다. “성모야! 선생님!”을 번갈아 부르면서 좀처럼 정

신을 가누지 못했다.

내가 말을 꺼낼 때마다 어머니의 진한 눈물이 연거푸 쏟

아져 나왔다.

중환자실에서 치료할 때 성모의 완치 가능 여부를 묻는

어머니께

“완치 가능성은 희박합니다만 두고 봐야죠.

부디 제가 틀렸으면 좋겠네요”

라는 말을 반복했고, 5년 동안의 입원기간에도

“글쎄요,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려봐야죠!”

하면서 무정하리만큼 일관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내 어찌 성모 모자의 그 답답함을 모를 수가 있

겠는가?”

답답하기만 한 병원 생활이 1년쯤 지날 때였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네셨다.

“성모,줄기세포환자등록했어요.무어라도해봐야겠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나는 ‘중추신경계 환자들이 지

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조만간

환상적인 치료방법이 될 것’이라고 믿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차였다.

“어머니 그리고 성모야, 이건 아니야. 서울 가서 엄청나

게 고생만 하고 헛걸음칠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극구 말릴

수밖에 없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허황된 보도에 환자들이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구

나!’라는 생각에 한숨지었다. 다행히도 성모 모자는 아쉬

움을 뒤로한 채 내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 주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황우석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성모 모자는

“선생님 말씀이 맞았네요” 하면서 감격해 했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이 줄기세포 사건으로 우리가 두

텁고 돈독한 관계를 변함없이 지속할 수 있지 않았나 하

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서 “선생님, 욕창이 심해서 독방으로 옮겨야 되겠

어요!” “폐렴으로 호흡이 더 거칠어지고 환자가 많이 힘

들어해요” 등과 같은 환자의 위기상태를 당면할 때마다

식은땀이 났었다.

장기전을 치르기 위해서 기관절개술, 위장조루술, 치골

상부 방광설치술 등 생소하기만 한 시술들을 시행해야 했

고, 어머니는 나날이 초췌해지셨다.

아들이라 해도 온종일 병실 간호하는 일이 어찌 만만한

일이겠는가? 또한, 사지가 마비된 채 인공호흡기를 목에

달고 있는 환자는 얼마나 괴롭겠는가?

과연 나는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인

가? 나 홀로 막연한 의구심에 쌓일 때마다 정말 혼란스

러웠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폐렴도, 그리고 욕창

도 서서히 치유돼서 일말의 희망을 가져볼 때도 있었다.

특별기고

09

2017 The best care